[제20회 KOSA 런앤그로우 포럼] 공민왕과 정도전을 통해 본 좋은 리더와 나쁜 리더
[제20회 KOSA 런앤그로우 포럼] 공민왕과 정도전을 통해 본 좋은 리더와 나쁜 리더
  • 박시현 기자
  • 승인 2023.10.26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심용환 소장, 25일 ’역사와 리더‘ 주제 강연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심용환 소장이 25일 ‘제20회 KOSA 런앤그로우 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다.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심용환 소장이 25일 ‘제20회 KOSA 런앤그로우 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다.

[디지털경제뉴스 박시현 기자]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심용환 소장이 25일 ‘제20회 KOSA 런앤그로우 포럼’에서 ‘역사와 리더-절망의 시대, 희망의 역사’를 주제로 강연했다.

심용환 소장은 이번 강연에서 고려 말, 조선 초의 두 지도자인 공민왕과 정도전을 비교하며 좋은 리더와 나쁜 리더를 가르는 것은 구체적인 가치, 비전, 대안을 제시하는지의 여부에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강연내용이다.

◆공민왕, 열정적이며 성과지향적…고려사회 변화 못시켜 = 고려가 원나라의 속국으로 지낸 기간은 약 100년이었다. 이 기간동안 원나라를 등에 업은 권문세족들이 득세했다. 기황후로 대표되는 기씨 집안이 그 예다. 왕도 이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고려 왕은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고 태어난 왕자들은 원나라에서 교육을 받고 나서야 고려에 와서 왕이 될 수 있었다. 공민왕도 10세 때 원나라에 가서 교육을 받은 후 왕이 됐다. 그는 원나라에 충성 경쟁으로 발탁된 인물이었다. 원나라에서 선택한 인물이었던 셈이다.

공민왕은 반원 개혁을 펼친 화려한 승부사로 23년의 집권 기간동안 피 튀기는 정쟁에서 한번도 지지 않았다. 한반도 역사에서 이런 인물은 몇 안된다. 원나라를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기철, 노책 등을 척살하고 인사 교체를 단행해 개혁 라인을 형성했다. 또 원에 대한 선제 공격으로 잃었던 영토를 회복했다.

그런데 공민왕의 개혁으로 과연 고려가 나아졌는가? 그렇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공민왕은 위대한 리더는 아니며 나쁜 리더였다. 공민왕의 문제는 먼저 측근정치를 했다는 것이다. 측근은 모시는 사람의 성공의 결과물을 나눠 먹는자들이다.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걸 뿐 사회 개혁에 대한 비전은 없다. 당시 개혁적인 인물이었던 이제현, 이색은 왕을 바라보지 않고 가치를 바라봤다. 하지만 측근들은 가치, 비전,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부정부패의 몸통이었던 이 측근들을 공민왕은 내버려뒀다.

홍건족의 15만 대군이 고려를 침략했을 때 이를 물리치고 막았던 사람이 정세운 장군이었다. 우리는 역사적인 인물로 을지문덕, 강감찬은 알지만 정세운은 잘 모른다. 엄청난 공을 세웠던 정세운 장군은 공민왕의 측근이었던 김용의 시기와 음모로 포상은커녕 사형을 당하며 우리 역사에서 잊혀졌다.

공민왕 때는 또 내부 다툼과 반란으로 공민왕 자신이 죽을 뻔하기도 했다. 그리고 공민왕의 신임을 받던 신돈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개혁을 했다는 것은 신화이다. 구체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세상은 구조로 이뤄져 있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똑같은 악인이 등장한다.

공민왕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충격적이다. 남색, 행음 등이 그것이다. 조선 건국의 타당성을 위해 나쁘게 묘사한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공민왕은 파고들수록 흥미로운 인물이다. 열정적이며 성과지향적이었다. 그런데 왜 고려 사회가 나아지지 않았을까?

정도전, 비전과 방향성 제시하고 사람들과 공감해 나가 = 정도전은 공민왕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갔다. 정도전은 고려 우왕을 옹립한 보수파의 친원파 노선에 저항하다가 서른넷의 나이에 유배지를 전전하는 아웃사이더가 됐으며, 그 후 50대 초반이 되어서야 권력을 장악하고 조선을 세웠다.

정도전의 업적은 단순히 정치투쟁에서 성공해 조선을 세웠다는데 있지 않다. 정도전은 젊은 날에 품은 비전을 구체화했고 고려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각종 방책을 준비했고 권력을 잡은 후에 이를 실천했다.

과전법이 대표적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주택난, 전세 문제를 해결하는 특단의 경제개혁인데 사회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안정적인 사회상을 창출해 냈다. 과전법의 시행으로 사전을 혁파하고 권문세족을 무너뜨렸다. 국가가 토지 운용을 장악해 경자유전의 원칙을 회복하고 조세 공공성을 확립했다. 동아시아의 역성혁명에서 토지 개혁 후 나라를 건국한 사례가 있는가? 과전법은 1391년 시행됐으며 조선은 1392년 건국됐다.

정도전은 조선에 성리학이 뿌리를 내리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맹자는 역성혁명과 천명 사상을 이론화했다. 이를 실현한 나라는 중국에는 없었다. 조선은 유교적 이상국가를 지향한 첫 번째 나라였다. 정도전은 불교 패러다임을 혁파하고, 종묘와 사직이라는 새로운 정통성을 세우고, 조선경국전을 만들었다.

비전이라는 것은 뚜렷한 방향성과 함께 구체적인 에너지를 지녀야 하고, 나아가 여러 사람들이 공감하게 함께 이뤄가야 하는데 공민왕에게는 없었던 그것이 정도전에게 있었다.

제21회 KOSA 런앤그로우 포럼은 11월 29일 카이스트 이광형 총장이 ‘AI 천하삼분지계’를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